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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점성술의 역사적 관계

시사인포 2021. 8. 20. 20:15

점성술은 그 특성상 많은 종교들과 마찰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종교들은 하늘과 우주에 대해 자신들이 믿는 종교의 절대신이 창조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포스팅을 통해서 기독교와 점성술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독교와 점성술의 관계

유럽 단테 알리기에리는 파라디소의 칸토 5에 있는 수성의 구에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만납니다. 유럽에서 출판된 최초의 점성술 책은 서기 1010년에서 1027년 사이에 등장한 Liber Planetis et Mundi Climatibus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2세기 AD 테트라비블로스는 1138년 티볼리의 플라톤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되었습니다. 도미니카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별들이 불완전한 '지하' 육체를 지배하고, 신이 영혼을 지배한다고 말하면서 점성술을 기독교와 조화시키려고 시도하였습니다. 13세기 노바라의 수학자 캄 파누스는 비록 이 시스템이 동양에서 일찍이 사용되었지만, 주요한 수직을 30° 호로 같은 '집'으로 나누는 점성술 하우스 시스템을 고안했다고 전해집니다. 13세기 천문학자 귀도 보나티는 15세기 말 영국의 헨리 7세가 소장하고 있던 점성술 교과서를 집필했습니다. 신성한 희극의 마지막 부분인 파라디소에서, 이탈리아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는 그의 기독교적 관점에 맞게 전통 점성술을 각색했지만, "수없이 상세한" 점성술 행성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 왕국의 개혁에 대한 예언에서 점성술적 사고를 사용하였습니다.

중세 신학자 세비야 이시도르가 점성술의 예측적인 부분을 비판했습니다. 7세기에, 세빌리아의 이시도르는 그의 어원학에서 천문학이 하늘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반면, 점성술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하나는 과학적인 부분이고, 하나는 태양, 달, 그리고 별들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측을 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14세기의 존 고어는 점성술을 본질적으로 예측에 국한된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별들의 영향은 차례로 자연 점성술로 나뉘었는데, 예를 들어 조류와 식물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고, 사람들에게 예측 가능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되는 사법 점성술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14세기의 회의론자 니콜 오레스 메는 그의 리브르 사상에 점성술의 일부로 천문학을 포함시켰습니다. 니콜 오레스 메는 전염병, 전쟁, 날씨와 같은 사건의 예측에 대한 현재의 접근방식은 부적절하지만, 단지 예측은 유효한 조사 영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행동의 타이밍을 선택하기 위한 점성술의 사용을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며 강력히 공격했고, 자유의지에 근거하여 별들에 의한 인간의 행동의 결정을 거부하였습니다